모세의 축복<신명기 33:1-29>
* 창세기49장 야곱의 축복과 본문 모세의 축복은 서로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서로 다른 비밀이 있습니다. 축복과 저주는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흘러온 것이 흘러갈 때 복과 저주가 되는 것이지 사람의 마음과 생각과 감정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인정받지 않은 사람의 축복과 저주는 아무 쓸모없는 것임을 알고 잘 분별하여 축복을 무조건 좋아하지 말고 저주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야곱의 축복(창세기49장)과 모세의 축복(신명기33장)의 비교하여 보면 야곱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모세는 하나님 어머니의 마음의 축복으로 볼 수 있는데 야곱은 지파가 형성되기 전 상태의 아들에 대한 유언과 예언과 축복, 저주, 책망의 기도이며 모세는 지파의 힘든 과정을 거친 성장과 쇠퇴의 변화가 있은 후 이스라엘 백성 지파에 대한 하나님의 순수한 마음의 예언, 중보기도로 저주가 없는 축복기도입니다. 축복과 저주는 하나님이 근원이 되어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하나님 영을 따라 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이 인정한 사람과 인정하지 않은 사람을 분별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사람을 알아 볼 수 있는 그것은 여러분의 복으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 병이 나은 믿음의 여인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근원이 되어 여러분의 눈과 귀와 마음이 열려 흘러 들어갈 때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배 시간에 말씀에 반응하여 신앙으로 인내하여 입에도 달고 배에도 달아야 신앙이 성장합니다. 오늘 말씀에 귀를 기울이셔서 나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 순종하는 삶으로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삶인지 돌아보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1) 하나님의 모습
시내산은 호렙산에서 모세에게 명령하여 열 가지 재앙을 승리하게 하여 홍해를 말려 출애굽하게 하시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면서도 홍해를 건넜지만 백성들이 건너는 모습을 보고 따라 건너던 바로의 군사들은 다 물에 빠져 죽습니다. 하나님의 기적과 표적과 능력이 누구에게는 복이 되고 누구에게는 사망이 됩니다. 시내산은 하나님 말씀을 주시고 승리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곳 세일산은 광야를 통과하며 진행하는 과정중에 만나와 생수와 메추라기를 주시고 불평 원망하는 백성을 향한 분노와 저주를 참으시고 사랑하시고 책임지지는 하나님이 계신 곳 바란산은 이스라엘이 소망하는 가나안이 보이고 힘을 내게 하는 마지막 소망과 희망의 장소입니다. 우리 일생에 시내산과 세일산과 바란산을 허락하시어 인내하고 힘을 내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거인 골리앗을 사울은 두려워 떨었지만 어린 다윗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했기에 이긴 것처럼 내가 부족해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내가 최선을 다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두려움은 믿음을 갉아먹기에 영적 승리를 모르게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주님의 뜻을 사랑하기에 내가 최선을 다한 후 하나님께 맡기고 결과에 초연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도 말씀으로 받고 여호와의 백성도 하나님 앞에 말씀으로 받고 이렇게 말씀의 근본이신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이 하나로 역사할 때 진정한 신앙입니다. <여수룬>이란 바르고 아름답다는 의미인데 참 바르지 못한 부족하고 연약하고 가치 없는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눈으로 볼 때 곱고 아름다움입니다. 모세를 아브라함을 친구라 하시는 하나님은 행위보다 믿음의 반응을 강조하십니다. 성경은 위인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열심의 기록으로 우리를 다듬어 쓰시고 책망해야 할 우리를 오히려 칭찬하시며 여수룬이라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여러분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2) 12지파에 대한 중보기도와 축복
큰 복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아버지 야곱의 마음을 아프게 하여 큰 복을 누리지 못하는 불행한 르우벤에게 모세는 망하지 않도록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복을 빌어줍니다. 야곱이 세겜에서 머뭇거릴 때 여동생을 성폭행으로 인한 시므온과 레위의 살인으로 저주를 받아 시므온 지파가 열두지파에서 빠졌지만 레위지파는 모세가 시내산에 올랐을 때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자 레위지파가 목숨 걸고 하나님의 의분과 분노로 책임자를 죽이는데 동참하여 저주가 변하여 레위지파를 하나님께 헌신하고 장막과 말씀에 헌신함에 아론과 레위 자손을 통해 하나님의 율법이 이루어지는 복을 받게 됩니다. 요셉에 대하여는 창세기 신명기 모두 길게 언급한 이유는 하나님보다 돈과 세상과 출세가 앞서는 것은 죄가 되기에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화적, 종교적, 문화적 변화를 기독교 문화와 사상이 세상의 문화를 지배하는 영향력 있는 성도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3) 여수룬이여
<여수룬>이란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연단과 고난을 통과한 하나님의 사람이기에 위대한 사람 의인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잘 나간다고 출세했다고 다른 보다 좀 낫다고 절대 교만하지 마십시오. 여수룬이기에 하나님 사랑이기에 부족하고 연약한 죄 투성이인 우리가 아름답고 예뻐 보여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여수룬임을 기억하십시오. 열 가지 신과 싸우고 승리하여 바로 앞에서 홍해를 말려 건너게 하시고 가나안에 가서 아무런 무기 없이 이기게 하신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가 그 하나님을 믿음이 얼마나 큰 복의 여수룬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믿어지기에 행복하고 천국과 지옥이 믿어지며 말씀을 통해 찔림과 은혜 받으며 말씀의 반응이 있게 하심에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의 고백이 매일 있는 삶을 사십시오.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받고 간섭을 받는 사람으로 아들이라 신부라 부르시는 존재임을 잊지 말고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받은 깨달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존감을 가진 행복자의 삶을 사는 여러분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